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 로버트 벤투리 지음/ 임창복 옮김

-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왜 교수들이 그렇게 건축 필독서를 읽으라고 권유하는지, 내가 얼마나 미숙하게 설계해왔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난 번 루이칸의 책에서는 임지택이 하던 말들이 왜 했었나를 알 수 있었다면 이번에는 정진국교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었다. 건축 필 독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뒤에 11장 작품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아직 읽지는 않았다. 이 후에 읽기로 마음 먹었던 Learnig from Lasvegas가 출판사의 문제로 출판되지 않음이 조금 아쉽다.

1.비정형의 건축:온건한 선언

詩에 비교하면서 문학과 같이 모호한 상태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아직은 그 모호한 상태가 가지는 의미를 책의 서두에서 나는 알 수가 없었다.

2. 복합성과 대립성 대 단순화나 회화풍

복합성과 확대된 건축범위가 표현되려면 건축방법을 재확인해야 한다. 단순함을 무시할 수는 없다. 미스는 Less is more를 주창하고 건물의 많은 측면을 무시함으로서 훌륭한 건물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단순함도 잘못되면 Less is bore가 될 수 있다. 단순화되거나 겉으로만 다양해진 건물 대신 시각의 모호함을 따르는 여러 가지 변화가 재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3. 모호성

복합성과 대립성을 구비한 건축에는 모호함과 긴장이 붙어 다닌다. 건축은 형태인 동시에 실질적인 것이기도 하며 추상적이면서 구체적이다. 이런 모호성에 대해 읽으면서 모호성에서 주는 긴장감을 평면과 함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사부아 주택의 평면은 정방형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나는 “ah”라는 감탄사를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지적은 책의 후반부에서도 많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의 부족했음과 건축거장들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계산된 모호함, 건축의 프로그램을 반영하면서도 의미의 풍부함을 제공하고 있었다.

-모호함은 실로 훌륭한 시적 효과의 최상의 집합이며 그가 말하는 긴장, 즉 시적 충격이라 부르는 것에 가까운 긴장이라는 특질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스탠리 에드거 하이먼-

4.대립성의 단계1:건축의 ‘양자공존’현상

’그러나’라는 접속어는 프로그램과 구조의 현상에서 대립성을 갖춘 건축을 표현한다. 사부아주택은 외부는 단순하지만 내부는 복잡하다. 칸은 건물에 조잡한 콘크리트를 사용한다. 그러나 잘 닦인 매끄러운 석재도 쓴다. 대립성이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들뜬 역설도 아니다. 그것은 양자택일이 아닌 양자공존의 기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필라델피아의 펜실베니아 순수예술 아카데미 건물의 주계단은 주위에 비해 너무 크지만 기능적이며 의식적이고 상징적이며 계단 밑의 홀, 건물 전체, 거기다가 옥외 넓은 가로의 거대한 규모를 생각하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세인트 조지 교회는 전체의 형태가 남북축을 강하게 표현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서의 각 평면에 변화를 주어 남북축과 동서축을 같은 비중으로 암시한다.

5.대립성의 단계2:이중 기능을 갖는 요소

성당의 플라인 버트레스는 건물을 지탱함과 동시에 광장의 문이 된다. 판테온의 보강 아치 역시 시각적 효과를 노린 것보다는 구조적인 면에서 아치 조형과 벽 구조로 작용한다. 이중 기능을 갖는 요소는 양자공존과 관련은 있으나 다르다. 이중 기능을 갖은 요소는 용도나 구조와 관련된다면 양자공존은 전체에 대한 부분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6.질서의 수용과 한계:관습적인 요소

미스 : 현대의 어쩔 수 없는 혼란 중에 질서를 만들어 낼

칸 : 나에게 질서라는 언어가 질서정연한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대 건축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사항때문에 질서를 벗어나는 것이 정당화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프로그램과 환경에서, 또 경험의 모든 차원에서 외부와 내부, 쌍방에 변화와 혼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두번째는 인간이 만든 질서에는 결국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질서가 상황에 적응하지 않으면 그 질서는 변경되거나 다시금 틀을 잡아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때로는 질서를 파기함으로 의미가 강화되거나 질서를 과장할 수도 있다.

엘리엇 : 그칠 새 없이 미묘하게 변화하는 언어, 끊임없이 신선하고 뜻밖의 조성을 하게 되는 언어

워즈워스 : 일상에서 사건이나 상황을 선택하면서도 평범한 것이 평상시와 다른 곳에 놓임으로써 신선하게 보일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관습적인 요소는 거부될 수는 없으나 이를 질서라 한다면 관습의 반어적 사용은 건축에서 또 하나의 표현방식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알토는 ‘표준화와 비합리성을 한통속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제 표준화는 주역이 아닌 조역이 되고 말았다.’라고 말한다. 이는 상황과 문맥을 사려 깊에 고려하는 동시에 표준화에 의한 질서의 불가피한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7.조정된 대립성

칸 : 주위 상황에 맞도록 조정하는 것도 디자인의 역할이다.

사부아 주택의 평면에서 기둥은 간격 그리드에 의해 배치되지만 요구에 의하여 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찬디가르의사당 건물에서는 기둥은 폭력적이라 할 만큼 규칙적이며 그 안에 회의장이 놓여있다. 건물에서는 전체적인 질서가 있다. 미스의 직교선과, 라이트의 수평방향의 연속성과 구겐하임 미술관의 일관적인 큰 경사로가 그러하다. 그러나 이런 상징화된 질서를 조정해 예외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때로는 이것이 더 큰 의미를 전달할 수도 있다. 베니스의 산마르코 광장을 생각해보자. 대립된 주변 상황을 통해서 우리는 오히려 더 큰 공간 질서를 발견한다. 광장을 둘러싼 여러 건물의 높이, 양식은 물론이고, 규모, 리듬, 텍스쳐의 격렬한 대립성이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타임즈 광장도 마찬가지이다. 참다운 도시와 건축은 레빗타운과 같은 거짓 단순성과 질서에서 나올 수 없다.

8.병치된 대립성

앞의 조정된 대립성이 미온한 처리방법이라면 8장에서 논하는 병치된 대립성은 충격요법과 비슷하다. 병치된 대립성에는 활기찬 긴장이 있다. 시칠리아의 체팔루 대성당의 그리스도 모자이크가 다른 장식에 비하여 크다. 코르뷔제의 스타인 주택에서는 주출입구나 부출입구의 대비를 볼 수 있다. 대칭적인 파사드에서 동등한 위치를 부여 받았기에 그 대비는 더욱 신선하다.

9.내부와 외부

10.복합적인 전체를 지향하는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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